나폴레옹 (1927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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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폴레옹 (1927년 영화)은 아벨 강스가 감독한 1927년 무성 영화이다. 알베르 디외도네가 나폴레옹 역을, 블라디미르 로우덴코가 어린 나폴레옹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어린 시절부터 이탈리아 원정까지의 이야기를 다루며, 폴리비전 기술을 활용하여 와이드 스크린 화면을 구현했다. 칼 데이비스와 카민 코폴라가 음악을 작곡했으며, 케빈 브라운로우가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평론가들로부터 혁신적인 영화로 평가받으며, 런던 리뷰 오브 북스 등에서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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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1927년 영화) - [영화]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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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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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아벨 강스 |
제작자 | 아벨 강스 |
각본가 | 아벨 강스 |
출연 | 알베르 뒤도네 지나 마네스 앙토냉 아르토 에드몽 반 다엘 |
음악 | 아르튀르 오네게르 (프랑스) 베르너 하이만 (독일) |
촬영 감독 | 쥘 크뤼거 |
편집 | 마르그리트 보제 (1927년) |
배급사 | 고몽 |
개봉일 | 1927년 4월 7일 |
상영 시간 | 562분 (아래 참조) |
국가 | 프랑스 |
언어 | 무성 영화, 자막 포함 |
흥행 수익 | 250만 달러 (1981년 재개봉) |
2. 출연
- 알베르 뒤도네 - 나폴레옹 역
- 블라디미르 로우덴코 - 어린 나폴레옹 역
- 지나 마네스 - 조세핀 드 보아르네 역
- 에드몽 반 다엘레 -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역
- 알렉상드르 쿠비츠키 - 조르주 당통 역
- 앙토냉 아르토 - 장폴 마라 역
- 아벨 강스 - 루이 드 생 쥐스트 역
- 이브트 디외도네 - 엘리자 보나파르트 역
- 필리프 에리아 - 앙투안 살리체티 역
- 막스 막수디앙 - 바라스 역
- 아나벨라 - 바이올린 플뢰리 역
- 니콜라스 콜린 - 트리스트랑 플뢰리 역
- 모리스 쉬츠 - 파스콸레 파올리 역
- 앙드레 스탕다르 - 테레즈 탈리앵 역
- 수지 베르농 - 마담 레카미에 역
- 프티 비달 - 필리포 역
- 프랑신 뮤시 - 뤼실 데물랭 역
- 로베르 비달랭 - 카미유 데물랭 역
- 루이 보넬리 - 쿠통 역
- 장 디드 - 라 뷔시에르 역
- 르네 잔 - 장 샤를 피슈그뤼 역
- 앙리 보리외 - 보마르셰 역
- 마르그리트 강스 - 샤를로트 코르데 역
2. 1. 주연
배역 | 배우 |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알베르 뒤도네 |
젊은 시절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블라디미르 루덴코 |
조제핀 드 보아르네 | 지나 마네스 |
조르주 당통 | 알렉상드르 쿠비키 |
장폴 마라 | 앙토냉 아르토 |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 에드몽 방 다엘 |
생 쥐스트 | 아벨 강스 |
마리 앙투아네트 | 쉬잔 비앙케티 |
샤를로트 코르데 | 마르그리트 강스 |
루이 16세 | 루이 상스 |
바이올린 플뢰리 | 아나벨라 |
트리스타 플뢰리 | 니콜라 콜린 |
마담 레카미에 | 쉬지 베르농 |
2. 2. 조연
역할 | 배우 | 설명 |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알베르 뒤도네 | 프랑스의 군인, 영웅 |
조제핀 드 보아르네 | 지나 마네스 | 나폴레옹의 아내 |
조르주 당통 | 알렉상드르 쿠비키 | 국민 의회 몽테뉴파 |
장폴 마라 | 앙토냉 아르토 | 국민 의회 몽테뉴파 |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 에드몽 방 다엘 | 국민 의회 몽테뉴파 |
생 쥐스트 | 아벨 강스 | |
마리 앙투아네트 | 쉬잔 비앙케티 | |
샤를로트 코르데 | 마르그리트 강스 | |
루이 16세 | 루이 상스 | |
젊은 시절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블라디미르 루덴코 | |
바이올린 플뢰리 | 아나벨라 | |
트리스타 플뢰리 | 니콜라 콜린 | |
마담 레카미에 | 쉬지 베르농 |
1783년 겨울, 어린 나폴레옹 부오나파르테(블라디미르 로우덴코)는 프랑스 브리엔르샤토의 군사 학교에서 눈싸움을 지휘하며 리더십을 보인다. 그는 장 샤를 피슈그루 교관에게 자신의 이름을 코르시카 억양으로 "나프-아이-오니"라고 말하고, 다른 아이들은 "빨르-오-네"(코에 짚)라고 놀리지만, 피슈그루는 그가 크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지리 수업 중 세인트헬레나 섬에 대한 내용을 보며 백일몽에 빠지기도 한다.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나폴레옹은 독수리를 몰래 키우지만, 불량배들이 독수리를 풀어주자 분노하여 싸움을 벌인다.
폴리비전 방식은 세 면의 스크린에 하나의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이후의 시네라마와 유사하게 세 대의 카메라를 모터로 동조시켜 작동시켰다. 이 장치는 프랑스 영화 장비 제조의 선구자인 앙드레 데브리가 제작했다. 또한, 손으로 크랭크를 돌리는 카메라 대신 태엽식 휴대용 카메라와 우파식 카메라를 사용했다.[38]
3. 줄거리
1792년, 코르들리에 클럽에서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해리 크리머)이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자, 젊은 육군 중위 나폴레옹(알베르 디외도네)은 "당신의 찬가는 많은 대포를 구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파리 거리에서 우연히 조세핀 드 보아르네(지나 마네스)를 본 나폴레옹은 그녀의 미래를 예견하는 점성술사 마리 안 레노르망의 이야기를 듣는다. 1792년 8월 10일, 나폴레옹은 군중 통치가 파리를 장악하는 것을 보며 질서를 가져오려는 목적의식을 느낀다.
나폴레옹은 엘리사(이브트 디외도네)와 함께 코르시카로 돌아가 가족과 재회하지만, 파스콸레 파올리가 섬을 영국에 넘기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막으려 한다. 포초 디 보르고(아초 샤카투니)의 선동으로 위험에 처하지만, 기지를 발휘해 탈출하고 프랑스 국기를 돛 삼아 항해한다.
국민 의회에서 지롱드당과 몽테뉴당의 갈등이 심화되고, 나폴레옹의 배는 폭풍우를 만난다. 프랑스 군함 ''르 아자르''호에 의해 구조된 나폴레옹은 가족을 구출하고 프랑스로 향한다. 이때 호레이쇼 넬슨이 탄 영국 군함이 나타나지만, ''르 아자르''호를 공격하지 않고 지나간다.
1793년, 툴롱 포위전에서 나폴레옹은 장 프랑수아 카르토 장군의 무능함에 실망하고, 자크 프랑수아 뒤고미에 장군과 함께 전략을 세워 영국군을 몰아낸다. 이 공로로 여단장으로 진급하지만, 앙투안 크리스토프 살리체티의 모함으로 재판을 받을 위기에 처한다.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는 나폴레옹에게 파리 사령관직을 제안하지만, 거절당하면 재판에 넘기려 한다. 루이 앙투안 드 생쥐스트(아벨 강스)는 조세핀을 감옥에 가두지만, 나폴레옹과 조세핀은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 풀려난다.
나폴레옹은 방데 전쟁 참전을 거부하고 이탈리아 침공 계획을 세운다. 바르텔레미 루이 조셉 세레 장군은 이 계획을 비웃지만, 나폴레옹은 조세핀과 바라스의 도움으로 왕당파 봉기를 진압하고 내무군 사령관이 된다.
희생자들의 무도회에서 조세핀과 만난 나폴레옹은 그녀에게 매료되고, 외젠 드 보아르네의 아버지 칼을 돌려주며 호감을 얻는다. 조세핀의 도움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군대 책임자가 된 나폴레옹은 1796년 3월 9일 조세핀과 결혼한다.
텅 빈 국민 의회 회관에서 나폴레옹은 혁명 영웅들의 영혼을 만나고, 라 마르세예즈를 들으며 프랑스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다짐한다. 결혼 후 니스 (프랑스)로 떠난 나폴레옹은 열악한 상황에 놓인 군대를 몬테노테와 몬테제몰로에서 승리로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바라보며 미래의 승리와 조세핀의 얼굴을 떠올린다. 프랑스 군대는 독수리의 환영과 함께 전진한다.
4. 제작
4. 1. 기술적 혁신
폴리비전은 프랑스 영화 평론가 에밀 빌레모즈가 강스의 ''나폴레옹'' 촬영과 영사만을 위해 고안된 특수 와이드스크린 영화 형식이다.[9] 이 형식은 가로로 배열된 세 개의 무성 영화 릴을 동시에 영사하여 총 4.00:1의 화면비aspect ratio|애스펙트 레이쇼영어(3× 1.33:1)를 만들어낸다. 강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작은 화면에 국한되어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세 대의 카메라를 나란히 사용하여 화면을 확장하는 것을 생각했다. 이는 이 영화의 여러 혁신적인 기법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 영화 제작자들이 1929년에 70mm 필름 와이드스크린 (예: 폭스 그란듀어)을 실험하기 시작했지만, 와이드스크린은 1953년 시네마스코프가 도입될 때까지 널리 사용되지 않았다.
폴리비전은 나폴레옹의 마지막 릴에만 사용되어 절정의 피날레를 만들었다. 강스는 여러 혁신적인 숏을 원했기에 폴리비전으로 전체 이야기를 촬영하는 것은 물류적으로 어려웠으며, 각 숏은 세 대의 연결된 카메라가 허용하는 것보다 더 큰 유연성을 필요로 했다. 영화가 초기에 배급사에 의해 대폭 편집되었을 때, 새로운 버전은 표준 단일 프로젝터 영화관에서 영사할 수 있도록 중앙 스트립만 유지했다. 강스는 화면에 표시되는 필름의 세 패널을 나누는 두 개의 이음새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폴리비전 장면 중 일부에서 완전히 다른 세 개의 숏을 함께 배치하여 이 문제를 피했다. 강스는 1955년 처음으로 시네라마를 보았을 때, 와이드스크린 이미지가 여전히 매끄럽지 않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폴리비전 방식이라는 세 면의 스크린에 하나의 영상을 꽉 채워 투사하는 방식의 경우, 이후의 시네라마와 마찬가지로 세 대의 카메라를 모터로 동조시켜 작동시켰는데, 이 장치는 프랑스 영화 장비 제조의 선구자로 알려진 앙드레 데브리가 제작했다. 또한, 그 전까지 손으로 크랭크를 돌리는 카메라가 아닌, 태엽식 휴대용 카메라를 사용했으며, 우파식 카메라를 사용했다.[38]
5. 음악
이 영화는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의 탄생에 대한 강스의 해석을 담고 있으며, 영화에서 프랑스 가수 Damia (chanteuse)|마리즈 다미아프랑스어는 이 노래의 정신을 묘사한다. "라 마르세예즈"는 코르들리에 클럽 장면 등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연주된다. 1927년 파리 오페라 초연에서 이 노래는 알렉상드르 쿠비츠키가 라이브로 불렀다. 쿠비츠키는 영화에서 당통 역을 맡았으며, 유명한 가수이기도 했다. 강스는 쿠비츠키와 다미아에게 코르들리에 장면 촬영 중에 노래를 불러 출연진과 엑스트라에게 영감을 주도록 요청했었다. 케빈 브라운로우는 1983년에 강스가 "무성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이 "과감했다"고 썼다.[1]
영화의 대부분은 부수 음악과 함께한다. 1927년 프랑스에서 아르튀르 오네게가 작곡했고, 독일에서는 베르너 하이만이 별도의 스코어를 작곡했다. 1979~1980년에는 영화 복원 노력에 맞춰 칼 데이비스와 카민 코폴라가 각각 스코어를 준비했다.
카민 코폴라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 엑토르 베를리오즈 등 다양한 출처의 테마와 3가지 오리지널 테마, 프랑스 혁명 노래를 통합한 스코어를 작곡했다. 코폴라의 스코어는 라디오 시티 뮤직 홀에서 초당 24프레임으로 투사된 영화와 함께 연주되었다.
데이비스는 영웅 교향곡을 비롯한 고전 음악을 바탕으로 스코어를 편곡했다. 나폴레옹이 들었을 음악을 연구하여 코르시카 민요, 프랑스 혁명 노래, 조반니 파이젤로의 오페라 ''니나'' 등을 사용했다. "라 마르세예즈"를 반복 테마로 사용했다. 데이비드 길과 리즈 서더랜드가 영화 스코어링 작업을 도왔다. 이후 영화 복원 작업은 계속되었고, 2000년에 데이비스는 스코어를 확장하여 5시간 32분 길이의 새로운 버전을 런던에서 초연했다. 2000년 스코어는 2004년과 2013년 런던, 2012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데이비스가 지역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연주되었다.
5. 1. 오리지널 스코어
이 영화는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의 탄생에 대한 강스의 해석을 담고 있으며, 영화에서 프랑스 가수 Damia (chanteuse)|마리즈 다미아프랑스어는 이 노래의 정신을 묘사한다.[1] "라 마르세예즈"는 코르들리에 클럽 장면 등 줄거리의 여러 지점에서 반복적으로 연주된다.[1] 1927년 파리 오페라 초연에서 이 노래는 알렉상드르 쿠비츠키가 코르들리에 장면을 위해 라이브로 불렀다.[1]영화의 대부분은 부수 음악과 함께하며, 1927년 프랑스에서 아르튀르 오네게가 작곡한 오리지널 스코어가 사용되었다.[2] 같은 해 독일에서는 베르너 하이만이 작곡한 별도의 스코어가 사용되었다.[2] 1979-1980년에는 영국에서 칼 데이비스가, 미국에서 카민 코폴라가 각각 영화 복원 노력에 맞춰 두 개의 스코어를 준비했다.[2]
카민 코폴라는 1979년 말부터 루트비히 판 베토벤, 엑토르 베를리오즈,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펠릭스 멘델스존,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등 다양한 출처의 테마를 통합한 스코어를 작곡했다.[3] 그는 나폴레옹을 위한 영웅적인 테마, 조세핀과의 장면을 위한 사랑 테마, 보나파르테 가족 테마 등 세 가지 오리지널 테마를 작곡했으며,[3] 1980년 초 런던에서 데이비스가 제공한 프랑스 혁명 노래("아! ça ira", "라 카르마뇰")도 사용했다.[3] 코폴라는 마지막으로 "라 마르세예즈"를 다시 사용한다.[3]
1980년 9월부터 데이비스는 고전 음악, 특히 영웅 교향곡을 기반으로 한 스코어를 편곡했다. 베토벤은 초기에 나폴레옹을 해방자로 존경하여 이 교향곡을 헌정했기 때문이다.[4] 데이비스는 "라 마르세예즈"를 반복되는 테마로 사용하고, 국민 의회에서 유령 애국자들의 나폴레옹 환상 중에 다시 사용한다.[4]
5. 2. 주요 음악
이 영화는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의 탄생에 대한 강스의 해석을 담고 있으며, 영화에서 프랑스 가수 Damia (chanteuse)|마리즈 다미아프랑스어는 이 노래의 정신을 묘사한다.[1] "라 마르세예즈"는 코르들리에 클럽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연주되며, 줄거리의 다른 지점에서도 연주된다.[1] 1927년 파리 오페라 초연에서 이 노래는 알렉상드르 쿠비츠키가 코르들리에 장면을 위해 라이브로 불렀다.[1] 쿠비츠키는 영화에서 당통 역을 맡았지만, 그는 또한 유명한 가수였다.[1] 강스는 앞서 쿠비츠키와 다미아에게 코르들리에 장면 촬영 중에 노래를 불러 출연진과 엑스트라에게 영감을 주도록 요청했었다.[1] 케빈 브라운로우는 1983년에 강스가 "무성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이 "과감했다"고 생각한다고 썼다.[1]영화의 대부분은 부수 음악과 함께한다.[2] 1927년 프랑스에서 아르튀르 오네게가 작곡한 오리지널 스코어가 사용되었다.[2] 같은 해 독일에서 베르너 하이만이 작곡한 별도의 스코어도 존재한다.[2] 1979-1980년에는 브라운로우가 1927년 당시의 모습에 가깝게 영화를 복원하려는 노력에 맞춰 영국에서 칼 데이비스가, 미국에서 카민 코폴라가 준비한 두 개의 스코어가 준비되었다.[2]
1979년 말부터 카민 코폴라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 엑토르 베를리오즈,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펠릭스 멘델스존,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등 다양한 출처에서 가져온 테마를 통합한 스코어를 작곡했다.[3] 그는 나폴레옹을 위한 영웅적인 테마, 조세핀과의 장면을 위한 사랑 테마, 보나파르테 가족 테마 등 세 가지 오리지널 테마를 작곡했다.[3] 또한 1980년 초 런던에서 코폴라, 데이비스, 브라운로우가 만났을 때 데이비스가 제공한 프랑스 혁명 노래("아! ça ira", "라 카르마뇰")를 사용했다.[3] 코폴라의 스코어는 마지막에 "라 마르세예즈"로 돌아온다.[3] 이 스코어는 라디오 시티 뮤직 홀에서 프로듀서 로버트 A. 해리스의 제안대로 초당 24 프레임으로 투사된 영화와 함께 거의 4시간 동안 연주되었다.[3] 코폴라는 60인조 오케스트라 대신 오르간 연주자만 연주하는 몇몇 섹션을 포함시켰다.[3]
1980년 9월부터 데이비스는 고전 음악, 특히 영웅 교향곡을 기반으로 한 스코어를 편곡했다. 베토벤은 초기에 나폴레옹을 해방자로 존경하여 교향곡을 헌정했기 때문이다.[4] 데이비스는 나폴레옹이 들었을 음악을 연구하여 코르시카 민요, 프랑스 혁명 노래, 나폴레옹이 가장 좋아했던 오페라 (''니나'' by 조반니 파이젤로)의 곡, 18세기에 프랑스에서 활동한 다른 고전 작곡가들의 곡을 사용했다.[4] "라 마르세예즈"를 반복되는 테마로 사용하고, 국민 의회에서 유령 애국자들의 나폴레옹 환상 중에 다시 사용한다.[4] 데이비드 길과 리즈 서더랜드의 도움을 받아 영화 스코어링 작업을 진행했으며, 이들은 무성 영화 시대를 다룬 템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시리즈 ''할리우드''(1980)를 막 완성한 상태였다.[4] 제24회 런던 영화제에서 초당 20 프레임으로 4시간 50분 동안 상영하는 동안 데이비스는 렌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4] 이후 영화 복원 작업은 계속되었고, 2000년에 데이비스는 스코어를 확장하여 5시간 32분 길이의 새로운 버전을 런던에서 초연했다.[4] 2000년 스코어는 2004년과 2013년 런던, 2012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데이비스가 지역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연주되었다.[4]
6. 복원
Napoléon vu par Abel Gance프랑스어는 1980년까지 영화 역사학자 케빈 브라운로우에 의해 재구성되었는데, 여기에는 폴리비전 장면도 포함되었다. 브라운로우는 어릴 적 길거리 시장에서 이 영화의 9.5 mm 릴 두 개를 구입했고, 짧은 클립의 영화적 대담함에 사로잡혔다. 그의 연구는 평생 동안 이 영화에 매료되어 영화를 재구성하는 탐구로 이어졌다.[10] 1979년 8월 31일, ''나폴레옹''은 콜로라도주 텔루라이드에서 열린 텔루라이드 영화제에서 수백 명의 관객에게 상영되었다.[10] 이 영화는 특별히 제작된 아벨 강스 야외 영화관에서 전체 폴리비전으로 상영되었으며, 이 영화관은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다. 강스는 추운 날씨 때문에 실내로 들어가기 전까지 관객석에 있었고, 이후에는 뉴 셰리던 호텔의 자신의 방 창문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케빈 브라운로우도 참석하여 강스에게 실버 메달을 수여했다.[11][12][13]
브라운로우의 1980년 재구성은 아메리칸 조이트로프(유니버설 픽처스를 통해)가 미국에서 개봉했으며, 상영회에서는 카르마인 코폴라의 악보가 라이브로 연주되었다. 이 복원은 1981년 1월 23일부터 25일까지 뉴욕시 라디오 시티 뮤직 홀에서 미국 초연되었다. 각 공연은 입석 매진을 기록했다.[7] 강스는 건강 악화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다. 1월 24일 상영회 마지막에 전화기가 무대 위로 옮겨졌고, 관객들은 강스가 전화를 통해 듣고 있으며 그의 영화에 대한 생각을 알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관객들은 몇 분 동안 기립 박수와 환호로 열광했다. 이 영화의 부활을 둘러싼 찬사는 1981년 11월 사망하기 11개월 전에 거장 감독으로서 강스에게 늦게나마 인정을 받게 했다.
또 다른 복원은 1983년 브라운로우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영화가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상영되었을 때, 영화에서 가상의 인물 바이올린(내부와 외부의 적들에게 시달리는 프랑스를 의인화)을 연기한 프랑스 여배우 아나벨라가 참석했다. 그녀는 상영 전에 관객들에게 소개되었고, 한 차례 휴식 시간 동안 케빈 브라운로우와 함께 앉아 그의 영화의 역사와 복원에 관한 책에 사인을 해주었다. 브라운로우는 2000년에 영화를 다시 편집했으며, 여기에는 파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재발견된 이전에 누락된 장면이 포함되었다. 총 35분 분량의 필름이 추가되어 2000년 복원은 5시간 30분이었다.
이 영화는 오케스트라 비용과 폴리비전 섹션에 필요한 3대의 동기화된 프로젝터와 3개의 스크린이라는 어려운 요구 사항 때문에 완전 복원 상태로 상영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한 상영 중 하나는 2004년 12월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열렸으며, 칼 데이비스가 편곡하고 지휘한 고전 음악 발췌 곡들의 라이브 오케스트라 연주가 포함되었다. 상영 자체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통해 영국 영화 협회에 대해 후자가 코폴라 악보 없이 영화를 상영할 권리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 격렬한 법적 위협을 가하는 대상이었다. 합의가 이루어졌고 영화는 양일간 상영되었다.[14] 코폴라의 싱글 스크린 버전의 영화는 2007년 7월 13~14일 바스티유의 날을 기념하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서 2차례 상영되었으며, 1980년대 초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70 mm 인쇄본을 사용했다.[15]
2011년 7월 샌프란시스코 무성 영화제에서 브라운로우는 2000년 버전의 4번의 상영이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원래 초당 20프레임으로 상영되었으며, 마지막 트리프티크와 라이브 오케스트라는 2012년 3월 24일부터 4월 1일까지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의 5시간 30분 분량의 복원의 첫 미국 상영회는 3번의 인터미션이 필요하며, 그 중 하나는 저녁 식사 시간으로 설명되었다. 악보 편곡자 칼 데이비스가 46인조 오클랜드 이스트 베이 심포니를 지휘했다.[16][17][18][19][20]
2013년 11월 30일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열린 ''나폴레옹'' 상영회에서 만석으로, 영화와 오케스트라는 기립 박수를 받았으며, 좌석 앞쪽에서 발코니 뒤쪽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데이비스는 100분간의 저녁 식사 시간을 포함하여 8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21][22]
2016년 11월 13일, ''나폴레옹''은 BBC 라디오 4의 ''영화 프로그램''의 주제였다. BBC 웹사이트는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역사학자 케빈 브라운로우는 프란신 스톡에게 아벨 강스의 무성 영화 걸작 나폴레옹을 5시간 30분 길이로 복원하기 위한 50년간의 탐구와 영화가 DVD로 처음 출시될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누락된 장면을 찾는 노력이 왜 계속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23]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복원자이자 감독인 조르주 무리에의 지휘 하에 복원하고, CNC와 넷플릭스의 자금 지원을 받아 거의 7시간 분량의 소위 아폴로 버전(즉, 1927년 파리 아폴로 극장에서 상영된 ''나폴레옹'' 버전)의 복원이 2021년 5월 5일까지 완료될 예정이었다.[24][25] 복원 과정과 관련된 문제로 인해, 개봉이 연기되었고,[26] 2024년 7월 프랑스에서 초연되었다.[3]
날짜 | 제목 | 필름 길이 | 시간 | FPS | 편집자 | 악보 | 상영 장소 | 트립티크 | 포맷 |
---|---|---|---|---|---|---|---|---|---|
1927년 4월 | 나폴레옹 | 5400 m | 4시간 10분 | 마르그리트 보제 | 아르튀르 오네게 | 파리 오페라 | 톤 처리 | 35 mm | |
1927년 5월 | 나폴레옹(결정판) | 12,800 m | 9시간 22분 | 아벨 강스 | 아르튀르 오네게 | 파리 아폴로 극장 | 없음 | ||
1927년 10월 | 나폴레옹 (UFA) | 3시간 미만 | Universum Film AG | 베르너 하임만 | 독일 및 중부 유럽 | 톤 처리 | |||
1927년 11월 | 나폴레옹 | 총 4시간 10분, 2회 상영, 일부 장면 반복 | 아벨 강스 | 아르튀르 오네게 | 파리 마리보 극장 | 톤 처리, 2회 상영 | |||
1927-28년 겨울 | 나폴레옹 | 다양함 | 다양함 | 프랑스 지방 | |||||
ca. 1928 | 나폴레옹(결정판은 29개의 릴로 미국으로 보냄) | 6시간 43분 | 아벨 강스 | 없음 | 없음 | ||||
1928년 3~4월 | 나폴레옹 (가몽) | 총 3시간 정도의 2부로 상영 | 가몽 영화사 | 아르튀르 오네게 | 가몽-팰리스, 파리 | 없음 | |||
1928년 6월 | 나폴레옹 (영국 1928) | 11,400 m | 7시간 20분 | 아벨 강스 | 아르튀르 오네게 | 영국 | 톤 처리 | ||
1929년 1월 | 나폴레옹 (미국 1929) | 1시간 51분 |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 | 미국 | 없음 | ||||
ca. 1928 | 나폴레옹 (파테-농촌) | 17 릴 | 프랑스 농촌 | 없음 | 17.5 mm | ||||
1928 | 나폴레옹 (파테-베이비) | 9 릴 | 프랑스 가정 | 없음 | 9.5 mm | ||||
1929 | 나폴레옹 (파테스코프) | 6 릴 | 영국 가정 | 없음 | |||||
1935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아벨 강스에 의해 보고 들음 | , 나중에 | 아벨 강스 | 앙리 베르됭 | 없음 | 35 mm | |||
1935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필름 오피스 버전) | 없음 | 16 mm 9.5 mm 8 mm | ||||||
1955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스튜디오 28 버전) | 흑백 | 35 mm | ||||||
1965 | 나폴레옹 | 앙리 랑글루아 |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 없음 | |||||
1970 | 보나파르트와 혁명 | 4시간 45분 (24fps에서 4시간) | 20 | 아벨 강스 | 없음 | ||||
1979 | 나폴레옹 (브라운로우) | 4시간 55분 | 20 | 케빈 브라운로우 | 없음: 전자 피아노로 즉흥 반주 | 텔루라이드 영화제, 콜로라도 | 흑백 | ||
1980 | 나폴레옹 (브라운로우 1980) | 4시간 50분 | 20 | 칼 데이비스 | 에든버러 영화제; 내셔널 필름 시어터, 런던 | 흑백 | |||
1980 | 나폴레옹 (코폴라) | 4시간 | 24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카르마인 코폴라 | 라디오 시티 뮤직 홀, 뉴욕시 | 흑백, 4:3 내부 레터박스 | 35 mm 70 mm | |
1983 | 나폴레옹 (브라운로우 1983) | 5시간 13분 | 20 | 케빈 브라운로우 | 칼 데이비스 |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 흑백 | 35 mm | |
1983 | 나폴레옹(브라운로우 1983 TV 컷) | 4시간 50분 | 20 | 채널 4 (영국 텔레비전) | 없음 | ||||
1989 | 나폴레옹 (브라운로우 1980) | 4시간 50분 | 20 | 마리우스 콩스탕 | 시테 드 라 뮈지크, 파리 | 없음 | |||
1989 | 나폴레옹 (브라운로우 1989 TV 컷) | 4시간 50분 | 20 | 칼 데이비스 | 채널 4 (영국 텔레비전) | 톤 처리, 4:3 내부 레터박스 | |||
2000 | 나폴레옹 (브라운로우 2000) | 5시간 30분 | 20 | 로열 페스티벌 홀, 런던 | 톤 처리 | ||||
2004 | 나폴레옹 (브라운로우 2004) | 5시간 32분 | 20 | 로열 페스티벌 홀, 런던 | 톤 처리 | ||||
2012 | 나폴레옹 (브라운로우 2004) | 5시간 32분 | 20 | 파라마운트 극장, 오클랜드 | 톤 처리 | ||||
2013 | 나폴레옹 (브라운로우 2004) | 5시간 32분 | 20 | 로열 페스티벌 홀, 런던 | 톤 처리 | ||||
2014 | 나폴레옹 (브라운로우 2004) | 5시간 32분 | 20 | 지고 돔, 암스테르담 | 톤 처리 | ||||
2016 | 나폴레옹 (브라운로우 2004) | 5시간 32분 | 20 | 로열 페스티벌 홀 – 런던, BFI 사우스뱅크, 브리스톨 워터쉐드 | 톤 처리 | DCP (2K 스캔) | |||
2024 | 나폴레옹 (무리에) | 7시간 5분 | 18 | 조르주 무리에 | 프랭크 스트로벨 | 라 센 뮤지컬, 파리 | 톤 처리 | DCP (5K 스캔) |
7. 평가
''나폴레옹''은 무성 영화 시대뿐만 아니라 역대 최고의 혁신적인 영화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리뷰 집계 사이트 로튼 토마토는 67개의 리뷰를 바탕으로 평론가 87%가 이 영화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며, 평균 점수는 9.3/10이라고 보고했다. 웹사이트 평론가들은 "규모가 방대하고 혁신적인 기술이 돋보이는 ''나폴레옹''은 주제와 특별한 친밀함을 유지하는 표현력 있는 서사시"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27]
런던 리뷰 오브 북스의 아니타 브루크너는 이 영화가 "에너지, 사치, 야망, 광란의 쾌락, 높은 드라마, 끊임없는 승리에 대한 열망, 즉 나폴레옹의 운명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가장 중요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28] 2012년 상영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믹 라살이 이 영화를 "풍부한 이미지와 감정의 향연"이라고 칭찬하며 호평을 받았다. 그는 또한 3부작 피날레를 "압도적이고 놀랍도록 감동적인 경험"이라고 칭찬했다.[29] 워싱턴 포스트의 주디스 마틴은 이 영화가 "영웅을 열렬히 응원하고 악당을 비웃는 훌륭하고 만족스러운 영화적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진정한 예술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고양감을 제공한다"고 썼으며, 시각적 은유, 편집 및 테이블로를 칭찬했다.[30] 피터 브래드쇼는 가디언에 ''나폴레옹''이 "21세기의 최첨단 기술을 보여주는 것처럼 놀랍도록 미래적이고 실험적으로 보인다. 마치 대화식 대화가 없는 거대한 묵음 환각으로 진화한 것 같다"고 썼다.[31] 마크 커모드는 이 영화를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과 D. W. 그리피스의 작품만큼 영화의 발전에 중요한 작품"이며 "스크린의 경계를 모든 면에서 확장하는 만화경과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묘사했다.[32]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인터뷰에서 "저는 정말 끔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술적으로 [강스]는 시대를 앞섰고 새로운 영화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사실 에이젠슈테인은 그가 몽타주에 대한 그의 초기 관심을 자극했다고 말했지만, 스토리와 연기 면에서는 매우 조잡한 영화입니다."라고 말했다.[33]
이 영화는 1995년에 편집된 바티칸 영화 목록에 "예술" 부문으로 바티칸에 포함되었다.[34] 이후 복구 작업에도 참여한 케빈 브라운로우는 "영화의 시각적 표현 방법은, 아직도 '나폴레옹'보다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 영화는 영화적 효과의 백과사전이다. 한 명의 천재의 손에 의해, 무성 영화에 가능한 모든 것을 진열해 보여준, 현란하고 화려한 대전람회이다"라고 말했다.[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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